location_sub2_1_4.gif h2_sub2_1.gif sub2_1_img1.gif
  • sub2_1_tab1_off.gif
  • sub2_1_tab2_off.gif
  • sub2_1_tab3_off.gif
  • sub2_1_tab4_on.gif
sub2_4_img1.gif



sub2_4_img2.gif sub2_4_img3.gif

청소년 교육에 있어서 이제까지 항상 사용했던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예방적 교육과 억압적인 교육입니다.


억압 교육은 피교육자에게 규칙을 알린 다음, 감시하여 위반자를 적발하고 필요한대로 적절한 처벌을 가하기 위해 감시하는 것입니다. 이 교육에서 장상의 말이나 모습은 항상 엄격하고 비교적 위협적이어야 하며, 스스로 아래 사람과의 친밀감을 피해야 합니다.


교장은 자기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아래 사람들 사이에 거의 나타나지 않아야 하고, 대개 처벌이나 위협을 주기 위해서만 나타나야 합니다. 이 방법은 수월하고 힘이 덜 들며, 특히 군대에서 효과적이며, 일반적으로 법률이나 다른 규정들에 맞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알고 기억할 만큼 성숙하고 지각 있는 사람들에게 좋습니다.


예방 교육은 이와 다릅니다. 그와 정반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기서는 학교의 규정이나 규칙을 알려준 다음, 항상 학생들 위에 교장과 교사, 아씨스텐테의 시선이 머물러 그들을 보살핍니다. 매사에 사랑스러운 아버지처럼 말하고 모든 일에 있어서 안내자로 봉사하며, 조언을 해주고, 사랑을 다하여 타일러서 학생들이 잘못을 저지를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하는 것입니다.


이 교육은 전적으로 이성(理性), 종교, 자애(慈愛)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한 벌은 배제하고 있으며, 가벼운 벌 자체도 멀리하려고 힘씁니다. 다음과 같은 이유로 이 예방 교육을 택하는 것이 좋으리라 생각됩니다.


1. 미리 학생에게 경고를 했다면 저지른 잘못이 장상에게 보고되었을 때에도 모욕을 느끼지 않습니다. 또한 꾸중이나, 주의, 혹은 처벌을 받아도 화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친구처럼 미리 잘 이해시키고 타일러서 마음을 샀으므로 학생은 벌을 마땅히 받아야 함을 인정할 뿐 아니라, 거의 그 벌을 받으려 하게까지 되기 때문입니다.


2. 가장 본질적인 이유로는 청소년들은 규칙과 그에 따른 벌칙을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에, 흔히 가볍게 여기고 범하거나 생각 없이 범하고 벌을 받기가 쉽다는 것입니다. 만일 누가 친절히 일러 주었다면, 틀림없이 범하지 않았을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3. 강압적인 방법은 무질서를 막을 수 있으나, 위반자를 개선시키는 일은 드뭅니다. 청소년들은 받은 벌을 잊어버리지 않으며, 분풀이를 하려다 복수까지 생각하게 됩니다. 당장에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것 같지만 그들에게 계속 관심을 두는 사람들이라면, 젊은이들의 기억력은 무섭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들은 부모가 준 벌은 쉽게 잊어버리지만 교육자가 준 벌은 여간해서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들이 늙었을 때, 학교 시절에 받은 정당한 벌에 대하여 잔혹하게 복수를 한 예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예방교육은 학생을 친구로 만듭니다. 학생은 교사 안에서, 미리 타일러 주고 좋은 사람을 만들어 주며, 좋지 않은 일이나 벌, 불명예에서 건져주려고 하는 은인을 보게 됩니다.


4. 예방교육은 학생이 미리 알게 합니다. 교육자는 학생들의 재학 중이든 졸업 후에든 언제나 마음의 언어로 학생들과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교육자는 담당 학생의 마음을 차지했기에 마음대로 그들을 다스릴 수 있게 되고, 경고하고 충고할 수 있으며, 그들이 회사나 관공서, 가게에서 일을 할 때에도 고쳐 줄 수 있게 됩니다. 이 밖에 다른 많은 이유에서 예방 교육은 강압적 교육보다 우수하다고 생각됩니다.


sub2_4_img4.gif

이 교육방법은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하고... 모든 것을 믿고 모든 것을 바라고 모든 것을 견디어 냅니다."(1고린 13, 4-7) 라는 성 바오로의 말씀에 그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만이 예방교육을 성공적으로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성과 종교는 교육자가 항상 지니고 있어야 할 도구로서, 학생을 가르치고 그들이 말을 들어 목표에 도달케 하려면 스스로 실천해야 하는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교장은 학생들을 위하여 완전히 헌신해야 합니다. 그는 교장의 임무에 지장이 될 다른 일을 결코 맡지 말 것이며, 언제나 학생들 가운데 있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어떤 일에 붙들려 있어야 할 경우에도 다른 이들이 대신 학생들을 돌보아야 합니다.


교사, 기술교사, 아씨스텐테는 인정받을 만한 도덕성이 있어야 합니다. 학생들과의 애정이나 유별난 우정을 페스트처럼 피하도록 노력하고, 단 한 사람이 빗나가도 학교 자체가 위태롭게 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학생들이 자기들끼리만 홀로 있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가능한 한 아씨스텐테들은 학생들이 모일 장소에 먼저 가 있어야 하고, 교대할 아씨스텐테가 오기 전까지 그들과 함께 있을 것이며, 학생들을 할 일 없이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마음껏 뛰고 달리고 소리를 지를 수 있는 폭넓은 자유를 주어야 합니다. 체육, 음악, 웅변, 연극, 소풍은 규율을 잡는 데 매우 효과적인 방법이며, 풍기(風紀)와 건강에도 유익합니다. 단지 오락 내용, 대화 참석자들과 행해지는 연설들이 비난의 대상이 되지 않게 할 것입니다. 젊은이들의 위대한 친구 성 필립보 네리는, "하고 싶은 대로 하라. 너희가 다만 죄만 짓지 않는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한다." 고 말하였습니다.


잦은 고백성사와 잦은 영성체, 그리고 매일의 미사는 위협과 회초리를 멀리하려는 교육이라는 건물을 지탱해 주는 기둥들입니다. 청소년들에게 거룩한 성사를 자주 받으라고 절대로 강요하지 말고, 다만 성사를 받도록 격려하고 이를 잘 받을 수 있도록 편의를 제공해주어야 합니다. 피정이나 삼일기도, 구일기도, 강론, 교리수업 등을 할 때에는, 사회생활을 해나가는 데 있어서나 마음의 평정을 위해서, 또한 영혼 구원을 위하여 이처럼 쉽고 유용한 수단을 바로 이 거룩한 성사들로 제공하는 우리 종교의 아름다움과 위대함, 거룩함을 잘 부각시켜 주어야 합니다. 이런 방법으로 하면 아동들은 이 신심업을 좋아하게 되어 기쁘게 성사에 참여하고 좋은 결실을 얻을 것입니다.


학교 안에서 좋지 않은 이야기를 하는 친구들이나 사람들, 좋지 않은 책이 들어오지 않도록 엄중히 감시해야 합니다. 교육기관에 있어서 잘 선택된 좋은 수위(守衛)는 그곳의 보배입니다.


매일 평상시의 기도가 끝난 후, 학생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교장이나 그 대리자는 그들에게 공적으로 애정에 찬 말을 몇 마디 하고, 해야 할 일, 피해야 할 일 등에 대하여 어떤 주의나 조언을 다정하게 일러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날, 학교 안팎에서 일어난 사건들 중에서 교훈이 될 이야기를 짤막하게 하되, 이 훈화는 2~3분을 초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는 교육의 도덕성과, 원만한 운영, 교육의 성공 등의 열쇠가 됩니다.


나이가 든 후에 첫 영성체를 시켜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페스트처럼 멀리 하십시오. 그 때는 이미 마귀가 청소년의 마음을 차지하여 그의 천진성에 헤아릴 수 없는 해독을 끼쳐 놓았을 것입니다. 초대 교회에서는 부활절에 영성체 때 남은 성체를 어린이들에게 주는 것이 상례였습니다. 이는 교회가 즐겨 어린이들에게 일찍 영성체를 허락하였음을 알려주는 예입니다. 보통 빵과 구별할 줄 알고 충분한 교육을 받았다는 것이 보이면 나이를 가리지 말고 천상의 지존(至尊)께서 그 축복받은 영혼 안에 오셔서 다스리시게 해야 할 것입니다. 교리서에서도 잦은 영성체를 권하고 있습니다. 성 필립보 네리는 8일(일주일)마다, 또는 더 자주 영성체 하라고 권고하곤 했습니다. 트렌트 공의회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미사 참례할 때 영성체도 함께 하기를 바란다고 명백히 말하고 있습니다. 이 영성체는 단지 신령성체(神領聖體) 만이 아니라, 직접 성사를 받아서 이 존엄하고 신성한 제사에서 더 큰 열매를 거두도록 하라는 것입니다(트렌트 공의회 12회기 6장).


sub2_4_img5.gif

이 교육이 실제로는 어렵다고 할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사실 학생 편에서는 상당히 쉽고, 더 만족스러우며, 더 유익합니다. 교육자 편에서는 몇 가지 어려움이 따르긴 하지만, 교육자가 열성을 가지고 자기 일에 임한다면 어려움은 줄어듭니다. 교육자는 자기 학생들의 선익을 위해 몸 바친 사람이므로, 그의 목표, 즉 자기 학생들의 문화적, 도덕적, 학문적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온갖 불편과 수고를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 열거한 유익함들 외에도 다음과 같은 이점들이 또 있습니다.


1. 학생은 선생님에 대한 존경심이 늘 가득하고, 후에도 받은 지도를 항상 기쁘게 기억하고, 선생님과 장상들을 아버지와 형으로 생각할 것입니다. 대체로 이렇게 교육받은 학생들은 그들이 어디를 가든 항상 그 가족의 위로가 되며 유용한 시민, 선량한 그리스도인이 될 것입니다.


2. 입학 당시의 성격이나 품성, 도덕적 상태가 어떠했든 간에 학생의 가족들은 자기 자녀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나아지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오랫동안 가족들의 골칫거리였고, 교도소에서도 거부당했던 아이들도 이 교육방법으로 성격과 품성을 바꾸고 바른 생활을 시작하여, 현재는 사회에서 훌륭한 직무를 맡아 가정의 기둥이요, 그들이 사는 마을의 자랑이 되었습니다.


3. 나쁜 습관을 지닌 학생들이 우연히 학교에 들어온다 해도 그들은 친구들을 해칠 수 없고, 선량한 젊은이들도 그들에게서 해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럴 시간이나 장소, 기회가 없고 아씨스텐테가 현장에 있을 것이니, 즉시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sub2_4_img6.gif

처벌에는 어떤 규정이 있습니까? 가능한 곳에서는 결코 벌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제재(制裁)가 꼭 필요한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하십시오.


1. 교육자가 학생들의 존경을 받으려면 먼저 학생들 사이에서 사랑받는 자가 되도록 노력하십시오. 학생의 사랑을 받는 교사라면 다정한 태도로 대해 주지 않는 것 그 자체가 벌이 됩니다만, 경쟁심을 일으키는 벌은 학생들에게 용기를 주고, 절대로 모욕감을 주지 않습니다.


2. 청소년들에게는 어떤 수단을 벌로 사용하면 그것이 곧 벌이 됩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냉정한 시선이 따귀 한 대보다 훨씬 큰 효과를 냅니다. 일을 잘 했을 때의 칭찬과, 소홀히 하였을 때의 꾸중은 바로 상과 벌이 됩니다.


3. 아주 특별한 경우 이외에는 꾸중이나 처벌은 모든 이들 앞에서 주지 말고, 개인적으로 하고 친구들이 모르게 할 것입니다. 그리고 학생이 자기 잘못을 이성과 종교로 이해할 수 있도록 매우 신중하고 인내롭게 할 것입니다.


4 . 어떤 식으로든 때리거나 고통스러운 자세로 무릎을 꿇려 앉힌다거나 귀를 잡아당기는 등 이와 비슷한 다른 체벌들은 절대로 피해야 합니다. 민법으로도 금지되어 있을 뿐 아니라, 청소년에게 적개심을 일으키며, 교육자의 위신을 떨어뜨립니다.


5. 교장은 징계 법규에 정해진 규칙과 상벌(賞罰)을 잘 알려주어, 나중에 학생이, 그런 규칙이 있었는지, 금지되어 있었는지도 몰랐다고 변명할 수 없도록 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의 각 분원에서 이 시스템을 실천하게 되면, 회초리도, 그 외의 다른 격렬한 체벌 없이도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40여 년간 청소년들을 지도해 온 나는 그런 종류의 처벌을 사용한 기억이 없습니다.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나는 항상 학생들에게서 그들이 의무적으로 해야 하는 것 뿐 아니라, 그저 단순히 그들에게 바라던 일까지도 얻어냈으며, 가망이 없어 보이던 아이들에게서까지도 얻어냈습니다.


bg_footer.gif

X
Login

브라우저를 닫더라도 로그인이 계속 유지될 수 있습니다. 로그인 유지 기능을 사용할 경우 다음 접속부터는 로그인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단, 게임방, 학교 등 공공장소에서 이용 시 개인정보가 유출될 수 있으니 꼭 로그아웃을 해주세요.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