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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레시오 수녀회가 한국에 진출한 시기는 해방(1945)과 한국전쟁(1950-1953)의 휴전 후 국토가 피폐해지고 정치적 .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고 가난한 시절, 외국의 원조가 절실히 필요한 때였다.

가톨릭 교회에서도 외국 교회의 도움을 받아 구호활동을 펴면서 교세 확장에 전력하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과 여건 안에서 살레시오 수녀들이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은 서울 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와 광주 교구장 해롤드 헨리 주교의 초대에 의해서였다.

1954년 광주 교구장 현 해롤드 주교는 한국 청소년들 가운데 일할 살레시오 형제들을 초대하여 1956년 4월 살레시오 중학교를 개교했다. 그리고 남학생뿐만 아니라 여학생들에게도 이 같은 교육사명을 수행할 수 있도록 일본 관구장 데레사 메를로(Teresa Merlo) 수녀에게 ‘도움이신 마리아의 딸’(살레시오수녀)들을 보내 줄 것을 청원했다. 데레사 수녀는 1956년 9월 13일 한국 진출 가능성을 보기 위해 몬시뇰 빈첸시오 치마티(V. Cimatti) 신부와 함께 한국을 방문했다.

해롤드 주교가 광주에 학교 설립을 구상하는 동안, 서울 교구장 노기남 주교는 당시 살레시오 수녀회 총장 에르멜린다 루꼿티 수녀에게 서한을 보내어 영등포구 도림동의 ‘성 요한 보스코 본당’에서 신자들과 소녀들을 돌보아주기를 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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