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화해·일치] 여자의 위대한 이름, 어머니


2016년, 칼바람 불던 겨울밤, 탈북 여성들의 쉼터에서 옥향을 만났다. 어눌한 말투에 기미가 짙게 낀 옥향은 24살이었다. 도박과 술로 가산을 탕진한 아버지와 이혼한 엄마와 끼니를 걱정하며 살다가 16살 때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친척의 거짓말에 언니와 함께 중국으로 팔려 갔다. 17살에 12살 연상인 한족 남편 사이에서 아들을 낳고 기르면서 억울하고 굴욕감을 느낄 때도 한족과 조선족의 고발과 위협, 북송의 위험 속에서 숨죽이며 살얼음판을 걷듯 살았다. 한국에 가면 공부도 할 수 있고, 임대주택도 마련해 준다고 들었지만, 아들이 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는 엄마가 곁에 있어야 커서 나쁜 길로 빠지지 않는다는 확신이 있었다. 그래서 아들을 학교에 입학시키고 남편과 합의해 한국으로 왔다는 옥향의 모성적 현명함과 희생에 감탄했다. 하나원을 퇴소하고 주민등록증을 받아드는 순간, 이제 아들을 마음 놓고 부르며 살 수 있다는 벅찬 가슴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고 한다.

옥향은 꿈사리공동체에서 살면서 오전에는 검정고시학원, 오후에는 알바를 했다. 중국의 아들에게 양육비를 보내며 자신이 잃어버렸던 꿈많은 소녀 시절을 되찾은 듯 행복해했다.

라일락 향기 짙은 어느 날, 남편이 아들을 오토바이로 학교에 데려다 주다 교통사고로 즉사하고, 아들은 다리를 심하게 다쳐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옥향은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러나 아들이 엄마를 애타게 찾는다는 이야기에 옥향은 정신과 마음을 추슬러 중국으로 날아갔다. 옥향은 그 이후 3년 동안 한국과 중국을 오가며 두 번의 대수술과 재활을 통해 아들 다리를 정상적으로 회복시켰고, 치료비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물류센터에서 밤새도록 일하고 아침에 돌아와 쪽잠을 자고 다시 학원에 가 공부를 하면서 초·중·고등학교 졸업 검정고시를 모두 한 번에 합격하는 경이로운 정신력과 의지력을 보여줬다.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로 아들한테 가지 못하고 매일 화상통화로 아들과 상봉하며 간호조무사 자격증 취득에 도전하고 있다.

여자는 자식을 위해 재창조되고, 자신의 한계를 초월하는 절대적인 모성 본능이 어머니라는 숭고하고도 위대한 이름을 갖게 하기에 나는 옥향을 보면서 같은 여성으로서 부럽고 존경스럽다.

아름다운 성모성월, 코로나19 팬데믹 공포 속에서 세상의 수많은 어머니가 성모님과 함께 고통의 길을 걷고 있다. 성모님은 이 모든 고통과 슬픔 한가운데를 우리와 함께 걸으시며 하느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이 어떤 기적과 희망을 일으키는지 보여 주신다.

과연, 나는 “성모님을 닮은 영적 모성을 지니고 그 숭고하고도 위대한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내가 만난 아이들 가슴 속에 아로새겨질 수 있을까?”라고 읊조리며 묵주를 꼭 잡는다.

정현희 수녀 (‘꿈사리공동체’ 시설장)

가톨릭신문 5월 10일자 기사입니다.

https://www.catholictimes.org/article/article_view.php?aid=337625&params=page%3D1%26acid%3D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