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점지 고쳐 상 받은 아이

김인숙 수녀 2012. 0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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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살레시오초등학교 교장수녀선생님과 아이들

 

 

나는  21년 동안 살레시오 초등학교 교사 수녀로 살아왔다. 교장직 5년을 제외하고는 언제나 담임을 맡아 아이들 속에서 지냈다. 교사 생활을 하면서 내가 아이들에게 심어주고자 했던 가치관은 ‘사람은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교직에 몸담고 있는 동안 나의 변함없는 신조였다.


학년이 바뀌는 새해가 되면 내 자신에게도 이 가치관을 새롭게 다짐하였고 나와 인연을 맺는 아이들에게 사람이 살아가면서 지켜야 인간의 기본 도리로 심어주고자 힘썼다.   


수도자는 일정한 시간표 생활을 한다. 매일 동트기 전 새벽에 일어나 성경 말씀을 묵상하며 하루를 준비한다. 성경에는 무수한 희로애락의 인간사와 헤쳐 나가는 삶의 지혜가 담겨 있다. 나는 아이들에게 새벽마다 묵상한 그날의 성경말씀을 바탕으로 어떻게 사는 게 바르게 살아가는 것인가의 방법을 제시해 주었다.


우리 학교는 전체 학생들이 아침 방송조회를 한 후에는 학급조회가 있다. 나는 매일 이 시간을 이용하여 그날 묵상한 성경말씀을 이야기 해 주면서 하느님은 우리를 바라보고 계시고, 우리를 사랑하고 계시기에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다. 아이들의 반응은 수업시간보다 더 열심히 듣고 또 내가 말한 것을 실천하려고 노력하였다. 진리의 말씀은 종교의 벽을 넘어 순수한 아이들 마음에 그대로 스며들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초등학교 1학년부터 3학년까지의 아이들 특징은 친구든, 누구든 그가 하는 대로 모방하려고 한다. 특히 담임이 말할 때는 나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하느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듣고, 그대로 하려는 순수 그 자체의 아이들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 양심에 대한 교육이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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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마당에서 공불기 경쟁을 하는 아이들

 

 

기호는 우리 반의 반장이었다. 외아들인 기호는 약간 이기적이며 자기 밖에 모르는 아이었다. 성적도 학급에서 1등, 전교에서 5등 안에 들 정도로 우수했다. 월말고사를 치르면 평균 90점 이상 받은 학생에게 주는 ‘학력장’을 기호는 매달마다 받았다. 


3학년 2학기 중간 즈음 될 때의 일이다. 월말고사 시험을 쳤는데 기호는 어찌된 일인지 평균 90점이 그만 안 되고 말았다. 한 문제만 더 맞으면 되었는데 그 한 문제 때문에 안타깝게 상을 못 받게 된 것이다. 나는 어느 때처럼 시험을 보고 나면 아이들에게 자기 시험지를 나눠주고선 점수를 확인하게 하였다. 채점의 정확함을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또 만에 하나라도 채점이 잘못되어 상을 놓치는 경우를 막기 위해서였다.

 

월말고사는 학년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문제를 내고 채점을 마치면 담임은 다시 재확인한다.

그런데 기호가 시험지를 가지고 나왔다.
  “선생님, 이거 잘못 채점했어요.”
  “그래? 어디 보자.”

나는 기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문제에서 눈을 멈추었다. 그 정답은 2번 이었다. 그런데 기호는 정답을 1로 써서 틀렸다고 채점이 되어 있었다. 나는 금방 알 수 있었다. 기호가 1을 2로 고쳤다는 것을. 작대기 1자를 2로 고친 아래와 윗부분이 1자 색깔과 분명 달랐다. 그러나 나는 아이의 말을 믿고 정답으로 점수를 올려 주었다. 그렇게 하여 기호는 평균 90점으로 ‘학력장’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학력장’ 수여식 날, 상을 받은 기호는 오후 청소시간에 다른 날보다 더 열심히 청소를 하였으며 청소가 끝났는데도 웬일일까? 기호는 집엘 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물었다.


  “기호야, 왜 집에 안 가니?”
  “선생님 할 말이 있어요.”
  기호의 표정이 무척 어두웠다.
  “그래, 말해 봐라.”
  “여기서 말 안 하고 성당에 가서 할 거예요.”

성당은 우리 학교 아이들에게 익숙한 공간이다. 아침에 등교하면 먼저 성당에 들린 후 교실로 간다. 이것을 학교의 전통으로 권장은 하지만 아이들의 자율에 맡긴다. 고요한 성당에서 두 손 모아 기도하는 아이, 인사를 꾸벅하고 교실로 달려가는 아이. 무릎 꿇고 앉아 발가락만 꼼지락거리는 아이. 어떤 아이는 친구와 손잡고 들어와 서로 마주보며 낄낄 웃고 나간다. 아주 잠깐의 멈춤이지만 이 순간만큼은 아이들 마음이 선으로 가득 차, 악이 들어올 틈이 없다.
 
기호 손을 잡고 학교 성당으로 갔다. 성호를 긋고 기도를 바치기 시작하는데 기호가 울기 시작했다.
  “기호야. 왜 그러니?”
  “선생님, 제가 죄를 지었어요. 선생님, ‘학력장’을 타지 못하면 부모님에게 혼 날까봐 거짓말을 했어요.”
기호는 크게 소리내어 울었다. 나는 말없이 아이 어깨를 토닥였다. 기호는 담임인 나에게 진정으로 하고 싶은 말을 했다.
  “답이 틀린 건데……. 2로 고쳤어요……. 엉엉, 난 ‘학력장’ 필요 없어요. 너무 힘들었어요. 선생님, 잘못했어요. 하느님은 저를 용서해 줄까요?”


나는 며칠 동안 양심의 가책을 깊이 앓은 기호를 위로해 주었다. 
  “기호야. 그래, 네가 정직하게 말했으니까 나도 너를 용서해 줄 거고, 하느님께서도 너를 용서해 주실 거야.
기호는 또 한 번 다짐하듯 말했다.
  “저는 상장 필요 없어요.”
그리고 나를 보고 활짝 웃었다.  
우리는 다정히 손을 잡고 밖으로 나왔다. 가을 저녁 햇살이 넓은 운동장을 포근히 비추고 있었다.  

 

나의 교사 생활을 되돌아보며

류현숙 루치아수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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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 살레시오초등학교에서 첫영성체를 받은 아이들과 함께 한 교장수녀님

 

 

돈보스코 예방교육

 

 

자기 자신에게 솔직함은 아이들이 결단성 있게 생활에 직면하도록 도와주며 끝까지 의무를 다하도록 도와줍니다. 예방교육자 돈보스코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 자신과 하느님께 정직하지 않는 사람은 악의 올가미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는 이어서 말합니다. “한 젊은이가 매일 단지 일 분간이라도 기쁜 마음으로 조용히 기도한다면 그는 나쁜 행동을 하지 않을 것임을 확신하십시오.”

 

교육자인 교사는 학교에서 아이들을 이끄는 교육의 선두에 서 있으며, 학교는 아이들이 하루 생활의 중심이 되는 공간입니다. 따라서 교사의 말과 행동으로 나타나는 그의 가치관과 학교라는 공간적 분위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아이들은 없습니다.   

  
교사 수기 공모전에서 금상을 수상한 글은 읽은 적이 있습니다. <나는 실패한 교육자>라는 제목의 글은 이런 내용이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고3 담임을 맡으면서 소위 우리나라 최고라는 대학에 많은 아이들을 합격시켰다. 당시 나의 목표는 언제나 점수 올리기. 그러기 위해 수단 방법을 총동원하였으며 좋은 결과에 만족했다. 그러나 내가 합격시킨 그 많은 아이들 중, 나를 인생의 스승으로 찾아온 학생은 한 명도 없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점수 올리기 교사에 불과했다. 학생을 오직 점수로만 대했던, 나는 참으로 부끄럽고 실패한 교육자다.”    


오래전 일이지만, 지금도 우리 교육 현실은 그대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