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보스꼬』를 읽고

 

분도출판사에서 출판된 『돈 보스꼬』를 읽었다.

돈 보스꼬는 1815년 8월16일 아버지 프란치스꼬와 어머니 카프릴리오의 말가리따 오까에나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요한 보스꼬는 두 살이 되기 전 아버지를 여위고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게 된다. 아버지가 없는 집안은 가난했으나 그의 어머니는 균형을 잡고 아이들을 온화하면서도 강건하게 키워 나갔다. 신앙으로 아이들을 가르친 어머니 덕에 요한은 하느님을 보는 법과 기도하는 법을 배웠다.

 

가정형편이 어려운 중에도 요한은 명랑하고 밝은 아이로 자랐다. 어린이지만 사람들을 모으는 재주가 있었고 모인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그들과 같이 기도하기를 즐겨했다. 1834년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기로 하고 준비하던 중 꿈에 다른 곳에서 추수할 것이라는 것을 보고 기도 중에 수도원보다는 신학교에 들어가 사제가 되기로 한다. 요한은 1841년 6월5일 사제서품을 받고 돈 보스꼬가 되었다.

 

돈 보스꼬가 사제가 된 시기는 산업화의 시기였다. 많은 젊은이들이 도시로 몰려와 열악한 환경에서 노동으로 그들의 삶을 영위하고 있었다. 열심히 일해도 그들에게는 늘 가난이 존재했으며 그런 삶을 사는 도시의 젊은이들에게는 희망이 없었다. 이런 현실을 본 돈 보스꼬는 이들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돈 보스꼬는 길에서 시들어가는 이들에게 확실한 장래를 열어줄 프로그램을 준비했다. 이들은 자신의 존엄성을 발견하고 실현하기 위해 하느님을 만날 필요가 있었다. 돈 보스꼬는 젊은이들에 대한 문제를 깊이 파고들었고 그 결과 젊은이들을 위한 오라또리오를 생각했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이 오라또리오에는 수많은 젊은이들이 모여 들었다. 그들은 그 곳에서 공부를 하기도 하고 교리를 배우기도 했으며 미사를 드렸고 육체의 배고픔을 해결하기도 했다.

 

돈 보스꼬의 생애는 젊은이들과 함께 하는 생애였다. 어려운 환경에 있어서 장래에 대한 희망이 없는 젊은이들에게 장래에 대한 꿈을 꾸게 했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에게 아낌없는 후원을 했다. 돈 보스꼬는 사랑하는 소년들에게 그들이 사랑받기에 충분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했고 충분히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 주었다. 오라또리오에 오는 젊은이 중 신부가 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는 이들에게 신부가 될 길을 열어 주었고 신부가 된 이들은 돈 보스꼬의 훌륭한 협력자가 되었다.

 

돈 보스꼬에게 수 많은 협력자가 있었지만 제 일의 협력자는 그의 어머니 말가리따이다. 말가리따는 오라또리오의 많은 소년들을 위해 음식을 마련했으며 소년들의 떨어진 옷을 바느질해주었고, 그들의 잠자리를 마련해 주었다. 말가리따가 소년들에게 잠들기 전 짤막하게 한 훈계는 최초의 ‘밤 인사의 말’이었으며 살레시오회 집에서는 ‘밤 인사의 말’로 하루 일과를 끝맺는다. 오라또리오에서 모든 소년들의 어머니였던 말가리따는 1856년 11월 25일 68세의 나이로 하느님께로 갔다.

 

돈 보스꼬는 많은 어려운 일들이 섭리로 해결되리라는 것을 굳게 믿었고 그 믿음대로 모든 일에 거룩한 분의 섭리가 함께 했다. 돈 보스꼬가 9살 때 꾼 꿈은 사나운 짐승들이 순한 양으로 변하는 꿈이었다. 이는 돈 보스꼬 세상에 내던저져 거칠게 살아가는 젊은이들을 거룩하신 분이 섭리로 신앙을 가진 젊은이로 변화시키는 것을 예언한 꿈이었다. 또 17년 후에 다시 꾼 꿈은 사나운 동물이 양으로 변했다가 그 양들에게서 목자가 나오는 꿈이었다. 이 꿈 또한 이루어졌는데 오라또리오에 나오는 젊은이들 중 신부가 되어 돈 보스꼬의 협력자가 된 이들을 가리키는 꿈이었다.

 

돈 보스꼬의 교육은 신뢰와 사랑으로 이루어졌다. 거칠고 죄를 저질러 감옥에 갇힌 소년들을 신뢰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돈 보스꼬는 그들을 사랑으로 신뢰했으며 그를 실천에 옮겼다. 1855년 소년원의 모든 소년들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3일간의 피정과 총고해를 마쳤을 때 돈 보스꼬는 이들을 위한 하루 소풍울 계획했다. 형무소장과 장관은 경찰을 배치해야만 이들이 소년원으로 돌아올 것이라 이야기 하지만 돈 보스꼬는 경찰 없이 모두 돌아올 수 있다고 장담했다. 그는 소년들에게 이같은 사실을 이야기했고 소년들은 돈 보스꼬와의 약속을 지켜 아무런 감시 없이 소풍을 다녀왔다. 그들이 한 사람의 낙오도 없이 모두 소년원으로 돌아온 후 이런 일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을지 궁금해 하는 장관에게 돈 보스꼬가 말한 비결은 사랑이었다.

 

돈 보스꼬의 오라또리오 출신중 도미니꼬 사비오는 15세의 어린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도미니꼬의 생전 소망은 성인이 되는 것이었으며 돈 보스꼬가 가르쳐준 성화의 방법을 지키려 노력하면 살았다. 또 그는 작은 죄 하나라도 범하기 전에 제 목숨을 거두어 달라고 기도했다. 도미니꼬 사비오는 1954년 6월 비오 12세에 의해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돈 보스꼬는 1854년 그의 조력자들을 살레시안이라고 부른다. 이는 1859년 탄생하는 살레시오회의 시발점이 된다. 청소년, 특히 가난하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청소년 교육에 자신의 모든 것을 바친 돈 보스꼬는 1888년 1월 31일에 선종했다. 그 후 1934년 부활절에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성되며, ‘청소년들의 아버지오 스승’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청소년을 사랑하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다. 그들이 진정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게 해야 한다.’라고 말씀하신 돈 보스꼬의 가르침은 우리가 어떻게 청소년들을 대해야 하는지에 대한 말씀이다. 청소년들이 병들은 사회는 미래가 없는 사회다.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진정한 사랑을 베푸는 교육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실현해야 하는 과제이다.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육학과 4학년 김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