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집 마자렐로 ---  (이사가면서 고마운 마음 )-           송미래--
 글쓴이 : 마자렐로 (121.140.22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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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우리 집이다. 첫 번째는 아빠와 동생이 사는 집.
가출 후 내 집이 아닌 집에서 떠돌던 나는 어떤 한 천사분을 만나 마자렐로에 오게 되었다.
두 번째 우리집이었음을 이제야 이글을 쓰며 깨닫는다. 마음에 안 들거나 툭 하면 가출을 재미삼던 나는 아직도 마자렐로가 좋던 싫던 살고 있다. 꿈을 이룰 수 있기에...
나는 작년 10월 7일 제주도에서 방황하다 한 분의 천사를 만나 마자렐로에 오게 되었다.
그때는 내가 이만큼 성장할 줄은 몰랐다. 단지 공부를 하고, 하고싶은것을 배우며 지내려고 했었다. 하지만 이곳은 공동체 생활, 내가 바라던 소망 말고도 사람을 대하는 법, 정직하는 법 등, 인격을 키우게 되었다. 들어오기 몇 일전 한번 면담을 하러 왔다. 토요일 마인 친구들은 식당에 참새처럼 앉아 자신들이 먹을 음식에 넣을 멸치를 까고 있었다. 모두들 나를 쳐다 보았고 누구를 닮았단 소리까지 하였다. 당연히 나도 신기하였고 그냥 “안녕하세요” 인사하였다. 의아했던게 태평히 TV보며 멸치를 까고 있었다는 것, 알고 보니 토요일이라서 란다. 면담을 마치고 비행기 타고 제주도로 갔다가 선택하였다. 마자렐로를 믿기로 최대한 보여주고 배우기로, 그 전에 한 달이 너무 낯설었다. 한 달은 새로미 라고 갓 들어온 아이의 적응기이다. 이름조차 외우지 못한 아이들이 잘못한 나를 지적해 주고 보고 수군거리고 그때 영희 언니가 수호천사로써 잘 챙겨주고 막아 줬던 것 같다. 내가 오고 몇 주 있다가 수학여행을 갔다. 딱히 친해진 애도 없었던 터라 영희 언니만 졸졸 쫓아 다녔다. 수학 여행 후 나는 한 달을 지나 마인이 되어야 했었는데 조금 미뤄 졌었다. 하나 둘 친구가 생기기 시작하였다. 첫 번째로는 송희와 영상 언니였다. 송희는 밖에선 16살 이라고 친하게 지내고 새로미 때 약간의 눈총을 받은 것 같다. (새로미 때는 같이 다니면 안 된다는 규칙이 있다) 영상 언니는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충고도 잘해줘서 센터에서 영희 언니 다음으로 좋아한 언니였다. 친하게 지내고 잘 놀다가 11월 19일 에버랜드를 가던 날 일이 터지고 말았다. 송희가 나에 대한 섭섭하고 나쁜 감정이 터져 버린 것이다. 몸 싸움으로까지 번질 뻔하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느끼는 바가 많고 그 이후로 둘과 나는 서로 어색해졌다. 나는 말 수가 적어졌고 필요 이상으로 말을 하지 않았다. 활발하고 왈가닥 (내가 나를 그렇게 느낄 정도로) 이었던 내가 내성적으로 변하게 되었다. 최대한 집에 있는 사람들과 부딪히지 않으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12월 밖에 있을 때는 성탄절을 이곳에서 보내게 될 줄 몰랐었다. 꾸미고 또 꾸며서 예쁜 성탄집이 되었다. 선물도 많이 받았다. 이 시기에는 아빠한테 전화를 많이 하여 서로 귀찮아 싸웠던 적도 있다. 왠지 가족이 많이 생각나서 그랬었다. 성탄절을 포함하여 12월은 행사를 많이 했다. 1월 2011년 새해가 밝았다. 너무 곤하게 자서 원장수녀님의 ‘제야의 종소리’는 듣지 못했지만!! 17살이라는 생각에 노력하자고 다짐하고 정말 노력하고 있다. 새해 소원은 꼭 이루어진다. 그리고 1월 24일부터 방학이었다. 하나 둘 시험 볼 아이들 못 가는 아이들을 제외 한 사람들은 방학가고 나는 시험을 볼 아이들 중에 속하였다. 네일아트 실기 첫 번째로 이곳에서 딸 자격증이라 가지도 못하고 (제주도로 갈 예정이였고 늦춰졌다) 송희, 영상 언니, 나 이렇게 실기를 보기로 했다. 1월 29일 실기 시험 떨리고 긴장되는 마음 반, 제주도 갈 생각에 설레는 마음 반해서 시험장에 갔다. 배운 것 그대로 했지만 싫어했고 어려웠던게 나와서 짜증내며 했었다. 시험 후 센터에 들려 짐을 가지고 로사 언니와 김포 공항에 갔다. 바라고 바라던 ‘제주도’ 지금 내 나이의 99% (1%는 센터)를 지낸 ‘제주도’에 갔다. 이것 때문에 많은 마음고생 했는데 정말 하늘로 승천할 뻔하였다. 그렇게 7일 동안 제주도에서 지냈다. 2월 7일 센터로 돌아오는 날, 내가 마자렐로에서 생활한지 4개월이 되는 날 이였다. 센터 아이들은 반반으로 내가 안 들어온다 들어온다 생각했다. 하지만 돌아왔다. 그것도 선물까지 사들고 앞에서 말했듯이 이곳은 두 번째 집이기 때문이다.
후에, 네일 아트 2급 합격으로 자격증 발급이 되었고 워드 1급 시험 계획도 하였고 하루를 보냈다. 그런데 Oh My GOD 2월 21일날 내 인생 가장 중요한 부분인 학력을 높일 수 있는 검정고시 기간이, 말로만 듣던 지옥 기간이 시작되었다. 지금 까지도 역시나 내가 생각 한 지옥은 아니지만 정말 힘들긴 하다. 그러나 우리 모두 달리고 있다. 서로를 격려 해주고 모르는 것은 서로 물어보며 달린다. 이러기에 모두 예민해져 있다. 누구보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시간이고 놓치면 아까운 시간이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조심하고 있다. 이곳에 들어온 지 5개월이 다 되어간다. 그리고 우린 이사를 간다. 더 큰 꿈을 위하고 더 좋은 교육 환경을 위해서 거액을 들여 공사를 했다고 한다. 우리는 그 만큼 부응 할 필요가 있다. 자기 자아를 찾고 미래를 꿈꾸고 서로를 좀 더 배려할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약 5개월 동안 한 개의 자격증을 땄고 내 미래를 확실하게 찾았으며 진정 내가 이곳에 왜 있는지,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찾은 상태이다. 앞으로는 그것을 실현해야 한다. 더 큰 무대에서 이곳에서 울고 웃는 나는 오늘도 역시나 달린다. 추억이 많기에 그러기에 나는 이곳을 사랑한다.

두 번째 집 마자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