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은 이야기 2

<조선노비들, 천하지만 특별한>/김종성/역사의 아침/2013

여기 제주젊음의집에 이웃집이 생겼다. 주교회의에서 지은 엠마오연수원이다. 그곳에 파견되어 온 송수녀님(샬트르회)이 책 한 권을 빌려주셨다. “시야를 넓히기 위하여”라며 건네신 책이다. 우리 총회 메아리! 읽고 보니 꼭 맞는 말씀이었다. 표지에는 SPC서울관구도서관 0038340 이라는 딱지가 붙어있고, p.33, p.133. p.233에마다 “바오로도서”라는 인장이 찍혀 있다. 우리들 책에 p.24에 인장을 찍듯이다.

내 시야가 넓어지도록 글을 써 주신 김종성(동아시아 역사연구자)이라는 분을 고맙게 생각한다. 유모어를 곁들여 간간히 세상 상식도 풍부히 건네시면서, 세계적 추세인 노비제도 폐지가 1894년 어떻게 우리나라에서 완전히 이루어지게 되었는지를 현재의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로 결론을 맺으며 재미있게 전개해 가셨다. 글 읽는 노비 박인수, 신분 세탁으로 재상이 된 반석평, 노비가 된 경혜공주, 서자보다 못한 얼자 홍길동, 현재의 대기업 이사급의 당시 노비들, 사랑에 실패한 여종 덕개 등을 전하는, 이분의 해박한 지식에서 진실성과 사랑이 읽어졌다. 이 책은 작은 도서관 한수풀에도 있으니, 전국 각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을 것이다. 책 읽을 시간이 부족한 우리 친구들에게 두어 구절 인용하여 조금 나눈다.

p.263 정상적인 경우라면 조선왕조는 동학농민전쟁을 계기로 간판을 내렸어야 했다. 정부군이 동학농민군 앞에서 허무하게 무너진 것만 보아도, 조선왕조의 통제력이 이미 와해되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당시 상황에서는 동학농민군에 의해 노비제도가 공식적으로 해체될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고종이 동학농민군 진압을 위해 청나라 군대를 끌어들이고 여기에다 불청객 일본군까지 덩달아 가세하면서, 노비제도는 동학농민군이 아닌 제3자에 의해 처형을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다. 동학농민군이 밀려난 자리는 일본군에 의해 대체되었다. 일본군이 조선 조정을 장악한 상태에서 갑오경장이 일어남에 따라, 조선의 노비제도는 최종적으로 종언을 고했다.

p.264 글을 마치며/노비제도의 종말

이 글의 뒤표지가 몇 장 남지 않은 지금, 노비를 마당이나 쓸고 잡일이나 하던 하인쯤으로 치부하는 독자는 거의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독자는 옛날 노비가 현대 서민과 크게 다르지 않은 존재였다는 판단에 도달했을 것이다. ...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했지만 크게 부각되지는 않았던 임금노동자제도가 조선부터 각광을 받은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인간을 평생 묶어두고 노예로 부리는 것이 더는 쉽지 않음을 깨달은 노비주들은, 언제든지 고용하고 해고할 수 있는 임금노동자 쪽으로 눈길을 돌린 것이다.

임금노동자가 차츰 대세를 이룸에 따라 1894년에는 노비제도가 공식적으로 폐지되었다. 노비의 존재가 미미해 지고 노비 이외의 대안이 마련되자 노비제도가 공식적으로 소멸한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1894년에 벌어진 사건(동학)은 노비제도를 폐지한 사건이 아니라 노비제도가 더는 필요하지 않음을 확인한 사건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