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고니아 꿈의 땅

 

 

 

 

파타고니아 대서양해안을 밟은 첫 사람은 A. Vespucci인 것 같다. 그는 1502년 여행시 인도양을 50S까지 건너가려 했다. 18년 뒤에 마젤란이 파타고니아의 동쪽해안을 따라 항해하였고 몇 지역에 이름을 부쳤다 [].성율리안 만에서 겨울을 나면서 탐험단이 원주민들과 접촉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첫 발견후 파타고니아는 3세기동안 별로 알려지지 않았었고 그 내부가 미지의 세계로 남아 있었다. (메를로 클라우디아, 파타고니아, 탐험과 역사, 이탈리아 과학, 문학과 예술백과, 요한 트레카니설립 이탈리아 백과사전학회, 밀라노 리촐리 출판사 1935, 492).

아르헨티나 정부가 1879년에 2년에 걸친 군사작전으로 그 지역을 점령한 뒤 파타고니아가 드디어 알려지고 선교사들에 의해 , 특히 성요한 보스코가 파견한 살레시오선교사들에 의해 상당부분이 개화되었다(1880). (Malesani Emilio, Argentina, in Enciclopedia Treccani, IV, 186).

1975년 첫 선교사 파견시 이탈리아에서 떠난 쟈코모 코스타마냐 신부는 먼저 파타고니아를 탐험했지만 별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두번 째는 어쩔 수 없이 1879년 로카 장군의 군대파견에 합류해서 인디언 부족들을 만났고 교리와 세례를 시작했다. 여성들과 어린이들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는 수녀들의 협력이 필수 적이어서 돈보스코는 마드레 마자렐로와 상의해서 그곳으로 수녀들을 파견하였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일간지 남 아메리카지에 수녀들의 도착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세상이 존재하기 시작할 때부터 그 머나먼 남쪽지역에서 처음으로 수녀들을 보게 될 것이다(카페티 지셀다, 수도회 100년사 1권 로마 FMA수도회 197265-67)

파타고니아 영토는 광대한 평야이고 돌이 많고 대부분이 불모지이며 기후는 춥고 광풍이 몰아치는 지역이다. 정확한 면적은 알수 없지만 대체적으로 60만 평방 Km라고들 하고 인구는 지리학자들이 국경에 대해 일치하지 않아 정확히 말하기가 어렵다. 오늘은 리오네그로에서 마젤란해협전체라는 이론이 우세하는 것 같다. (cf Molfino José F., Argentina, in Enciclopedia Treccani IV, 195).

 

돈보스코는 꿈을 통해 자주 하느님의 계획을 접하게 되었다. 1871년과 1872년 사이에 그의 일생에 있어 가장 중요한 꿈중의 하나를 꾸었다². 그 꿈에 대해 생각하고 지도를 연구하고 남아메리카에 대한 책들을 공부하면서 하느님께서 그의 살레시오회원들을 파견하고자 하시는 곳이 파타고니아임을 알게 되었다. 이이 대해 그의 자녀들과 이야기 했을 때 열정이 폭발적이었다.

1996년부터 2008년까지 FMA수도회 총장을 역임하신 안토니아 콜롬보 수녀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그 꿈이 확실한 윤곽을 드러내기까지는 4년이 걸렸다. 꿈에 나타난 선교지는 첫 순간에는 아프리카, 그 다음은 중국, 호주, 마침내 파타고니아, 불의 땅으로 드러났다. 위로부터의 영감, 환시는 여러 지식과 중재를 통해서 구체화 된다.

 

다니엘 콤보니와 돈보스코의 접촉, 중국, 호주, 인도의 다른 선교사들과의 만남, 마지막으로는 사보나에서 아르헨티나 영사와의 만남은 식별을 위한 구체적인 요소를 보태게 되고 드디어 아르헨티나로 윤곽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 당시 아르헨티나에는 행운을 찾아온 수만명의 아탈리아인들이 있었다. 돈보스코는 이주민은 고국에서 뿌리째 뽑힌 사람들이기에 양심없는 사람들의 먹잇감이 되기가 일수였고, 신앙도 저버릴 위험에 처하게 됨을 알고 있었기에 살레시오회원들이 우선적으로 그들을 보살피기를 바랬다. 꿈의 실현은 초를 다투는 것이었다. 파타고니아와 불의 땅의 원주민들은 이세상에서 품위있는 삶의 길로 그들을 인도해줄, 영원을 위해서 구세주 그리스도와의 만남에로 인도해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다. 남아메리카에 깊숙이 스며드는 것이 단시간에 이뤄졌다.

사보나의 아르헨티나영사는 부에노스 아이레스 대주교에게 살레시오회원들에 대해 말씀드리고 대주교님께서는 살레시오 회원들이 자신의 교구에 오기를 바라셨다. 18751111일 돈보스코는 도움이신 마리아의 대성전에서 그의 선교사들에게 이별을 고했다.

아르헨티나로 떠난 살레시오회원각자는 돈보스코 손수 준비하신 각별한 기억이라는 제목으로 20가지가 적힌 종이를 지니고 있었다. 그중 첫 번째 말씀은 이것이다. “영혼들을 찾고 금전, 명예와 고위직을 찾지마라. 인솔책임자인 요한 칼리에로는 아주 특별한 말씀을 당부받았다.: 여러분이 할 수 있는 것을 하면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못하는 일을 하실 것이다. : 모든 일에 있어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과 도움이신 마리아님께 신뢰하십시요, 그러면 기적이 무엇인지 알게 될 것입니다».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파타고니아로 가는 길은 간단했다.

1880년에 주교님은 살레시오회원들에게 라자로회원들이 떠나면서 남긴 카르멘 데 파타고네스의 본당을 맡기셨다돈보스코는 이를 요셉 파냐노 신부에게 맡기셨다.

FMA들은 1877년말부터 아메리카에 가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복음화의 가능성이 열리는 카르멘 데 파타고네스에 그들을 부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안토니아 콜롬보 수녀가 기록하기를: 우리 수도회는 잘 다져지고나서야 해외선교에 개방하는 것이 아니었다. 수도회 탄생시기부터 선교정신이 특징이 된다. 우리 수도회는 돈보스코의 1872년 첫선교의 꿈과 동시에 탄생되고 그러기에 그 특징과 열정과 창설자의 뚜렷한 선교의지를 품고 있다. [] 모르네세의 작은 공동체는 세계방방곡곡에 예수님을 증거하게 해주는 선교정신을 마음껏 들이마실 수 있었다 ».이렇게 해서 안젤라 수녀님은 더 높은 위도를 향해 가기 시작했다. 1880년에 빌라 콜론에서 카르멘 데 파타고네스로, 1888년에는 카르멘 데 파타고네스에서 푼타 아레나스로 올라갔다.

안젤라 발레세 수녀님은 우루과이, 파타고니아, 칠레에서도 공동체 원장이었다. 25년동안 파타고니아와 불의 땅에 개설된 공동체들의 방문장상이었다.

이탈리아 니차몽페라토에서 열리는 1913 년 제 7차 총회참석차 돌아와 신체가 너무 허약해져서 선교지로 못 돌아가고 1914817일에 닛차에서 돌아가셨다.

 

돈보스코를 통해서 그 지역주교들로부터 부름받은 살레시오회원들은 FMA들을 초대한다. 사적인 이익추구에서 해방된 봉헌된 여성들의 현존은 여성과 어린이들을 접근하는데는 필수적이었으며 사도활동에 지원이되는 살림을 꾸려가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FMA수도회는 열정적으로 이 호소에 응한다. 그 당시 여성수도회들이 그러하듯이 자주적이 아니었고 살레시오회원들에게 의존하고 있었다 돈보스코 손수 수정하신 수기로 된 초기 회헌 초안에는 다음과 같이 씌여 있다. : FMA수도회, 수녀들은 성프란치스코 살레시오회의 총장 직속수도회이다” 1907Normae secundum quas 120호 훈령의 구체적이고 지혜로운 적용까지는 그러하였다.

서한들을 통해서 볼 때 안젤라 수녀님과 그의 공동체역시 열등감을느끼지 않았고 살레시오 회원들 역시 FMA들이 자신들에게 종속된 사람들이라고 여기지 않았다. 가장 좋은 것이 형제관계였다. 상식이 선교열정과 일상의 긴급상황과 통합되어 자연스런 협력관계가 이뤄지고 나와 너가 자연스럽게 우리가 되고 한편의 선이 모두를 위한 선, 모두의 선이 되었다.

아메리카에 도착한 선교사들이 첫 편지에 동봉한 코스타마냐 신부의 말이 의미 심장하다.: “성모님께서 당신 딸들을 사랑하시는 것을 늘 피부로 느끼게 됩니다. 성모님을 사랑하고 사랑하게 해야 합니다. 이 지역에서는 이익추구하는 말 외에는 들리는 것이 없고 그보다 더한 이야기도 들리고 이익을 위해 땀흘리고 아파합니다그런데 우리는 천국의 커다란 이익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까요?

개인과 단체의 공통된 이익이 주된 관심사이고 복음선포와 세상의 구원이라는 대단히 높은 관심사입니다이러한 내용은 안젤라 수녀로 하여금 많은 원주민 소녀들을 구원에로 인도하기 위하여돈보스코께 또다른 FMA들을 요청하고 고생으로 쇠약해진 살레시안들에게도 지원군들을 보내달라고 부탁드리게 된다. 안젤라 수녀가 죠반니 보넷티에게 보내는 서한에 형제들 입장에서 갈리에로 신부가 다음과 같이 덧붙인다. “현재 파타고니아에 있는 수녀들은 주민들의 존경을 받고 있으며 크고작은 소녀들의 주목(세심한 배려)을 받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조그마한 선이라도 할 수 있다면 FMA들 덕분입니다. 그들은 붙들어서 주님께 선물하고 싶은 영혼들을 준비해주고 주님께 데려갑니다. 회원들은 정말 많은 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금전도 많이 필요하고 섭리는 결코 지지 않습니다. 살레시오협력자들이 이 불의 땅 선교지를 돕기 위해 영웅적인 애덕을 하고 있습니다.”

살레시오 가족은 벌써 각 그룹의 활력을 이루는 선교열정을 나눔으로써 선의 결실을 내고 있었다. 안젤라 수녀가 보다 가까이에서 협력하는 살레시안은 요셉 파냐노 신부이며 돈보스코께서는 그를 깊이 이해하셨기에 남미에서 보내지는 도가 넘는 비용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신뢰를 지니셨다. 그는 푼타 아레나스의 원장이었고 안젤라 수녀님 역시 이 지역에 본거지를 두고 있었고 두 사람 다 중요한 기관들의 책임을 맡고 있었다.: 수녀님은 파타고니아 남부와 마젤란지역 방문담당이었고 파냐노 신부님은 파타고니아 남부, 포클랜드, 불의 땅의 감목대리를 맡고 계셨다. 가리발디 의용군병사출신 파냐노 신부와 겸허하지만 결단력이 있는 여성인 안젤라 수녀님은 언급한 지역의 복음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안젤라 수녀가 가족들과 살레시오회 장상들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78회나 파냐노 신부님에 관해, 공동체의 선익을 위해 수행하시는 말씀과 성사의 성무집행에 대한 대단한 존경심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있다. 자신에게 베푸는 형제적인 보살핌과 원주민들에게 복음화하고 인간의 품위를 격상시키기 위해서는 결코 노고를 마다하지 않음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칼리에로 신부와 코스타마냐 신부는 굳세고 실현시키는 능력이 있는 선교열정을 지닌분들로 자주 기억되고 있다. : 안젤라 수녀님은 동향인 피에트로 로타 신부, 피에트로 리칼도네 신부, 바오로 알베라신부, 프란체스코 보드라토 신부, 도메니코 토마티스 신부, 죠반니 마렝코 신부, 죠반니 보넷티 신부, 죠아키노 베르토 신부그리고 다른 많은 살레시안들을 명명하는데 그들 안에서 공동성소의 은혜를 공유하고 있는 성덕의 진정성을 지닌 장상과 형제들을 보고 있다.

후안 베키 총장신부님의 말씀을 인용하면서 마치고자 한다. 위에 말한 것이 초창기 SDB, FMA선교사들의 삶속에서 이미 체험한 것으로 나타난다.: 여러 가지형태로생겨난 살레시오 가족안에서 우리 두 수도회는 친교를 두텁게하고 영적모습이 보다 닮고 공동책임이 보다긴밀한 유일 무이한 관계를 갖고 있다. 살레시오 가족에 대한 소속은 평준화 하지 않고 역사속에 성숙되어 간 것을 가치화 한다. 우리의 관계는 동일한 카리스마의 집에서 청소년 사명을 위해 축성된 사람들로 태어나고 형제라는 사실에 기인한다

 

살레시오 수녀회 최초 선교사 안젤라 발레세 수녀의 편지

 

요셉 파냐노 몬시뇰께

예수님 안에서 사랑하올 몬시뇰, 성요한의 날 523일자로 마드레들께 보내주신 좋은 소식들을 읽었습니다. 그곳 집들과 선교지의 선을 위해 갈망하시는 모든 은총을 내려 주시길 늘 하느님께 기도합니다. 안토니엣타10 수녀님의 편지가 제 때에 도착한 것에 대해 다행으로 생각합니다. 젬마11 수녀님이 자신의 새로운 직무를 조금씩 익혀가고 있다고 하니 기쁩니다. 제가 수녀님들께 편지를 쓸때마다 몬시뇰께 신뢰할 것을 당부합니다.

몬시뇰께서는 언제나 수녀들의 선을 위해 애쓰고 계심을 제가 알고 있습니다. 존경하올 몬시뇰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저희의 선을 위해 하시는 모든 희생에 대해 상을 주시기를 빕니다. 그리고 저를 위해 기도해주시고 저에게 베풀어주신 모든 호의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지금으로서는 제가 필요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조금 시원하기만하면 좋겠습니다. 장상님들은 제게 부족한 것이 하나도 없도록 보살펴주시고 하느님의 은혜로 건강은 좋은 편이고 수녀원을 위해 일하고 뭔가 하기 위해 건강을 유지하려고 노력합니다. 장상님들은 가끔 수녀님들이 가족을 방문하거나 여행을 해야한다거나 할 때 동행하게 해주셔서 제가 아직 모르고 있던 많을 것을 보았습니다.

도움이신 마리아 대축일에 총장 수녀님께서는 저를 토리노에 데려가는 친절을 베푸셔서 저는 우리 천상 어머님를12공경하는 위대한 축제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예절과 트리오네13 신부님께서 아메리카의 집들 방문에 대해 열정적으로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고 100주년14 행사에 모두를 초대하셨습니다. 몬시뇰도 오시겠지요? 오시길 희망하고 주님께서 몬시뇰께 건강을 허락하셔서 당신의 원수들에 대한 승리를 노래할 수 있게 해주시라는 지향으로 기도합니다. 마드레들께서 안부 인사를 부탁하셨고 수녀님들도 그렇게 합니다. 저는 몬시뇰께 축복을 청하며 몬시뇰의 손에 친구하면서 예수님 안에서 존경을 다해 당신의 마지막 딸임을 고백합니다.

 

안젤라 발레세 수녀 드림

 

추신: 수녀님들, 어린이들, 제가 아는 모든 분들, 특히 젬마 수녀님께 안부 부탁드립니다. 신부님의 건강에 대해 궁금하기에 한두마디씩이라도 제게 늘 소식을 주십시오.

 

 

함께 기도합시다

 

주 예수님, 당신은 모두에게 생명과 희망이 싹트게 하시려고 몬시뇰 요셉 파냐노를 복음의 사자, 파타고니아의 황무지에 살레시오 카리스마의 전달자로 선택하셨나이다.

안젤라 발레세 수녀와 초창기 선교사 수녀들이 관대하게 친교를 이루며 그와 함께 협력하였나이다.

당신께 굳건히 연결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 대한 연민의 정이 넘치는 그들의 마음은 희생과 노고, 굶주림과 고독에도 불구하고 아낌없이 자신의 일생을 사랑의 봉헌물로 바쳤나이다. 오늘도 저희가 살레시오 가족으로서 그들처럼 교육사명에 있어 대범하며 열정적이게 하시어 돈 보스코와 마드레 마자렐로의 카리스마가 교회에 풍성한 성덕의 결실을 계속해서 줄 수 있게 하소서 아멘

 

 

하루를 살기 위한 노력 (실천사항)

 

각 공동체는 개별교회와 살레시오 가족의 다른 단체들과 그 지역 소재의 수도회들과 친교를 증거하며 협력할 것이다. 이는 하느님 나라를 위한 더 효과적인 활동을 하기 위함이다(회헌 61)